버스를 기다리며

누군가는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하고,
다른 이는 이름을 불러 그제야 꽃이 되었다는데
나는 생각하므로 나로 존재하는 것인가
내가 생각하는 네가 내게 오는 것인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 걸터 앉은 너의 손 끝에서
까딱 까딱 흔들리던 빨간 만년필은
살아있는 것처럼 이리저리 자신을 내던지고
붙잡힌 손은 그저 힘겹게 부축하며
끌려다니는 것처럼 보였었다

바람 속을 헤엄치는 것 같은 몸짓을 따라
문신처럼 새겨지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우연으로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없는데
빙판 위를 미끌어지는 스케이트처럼
빛나던 펜촉의 날카로움은 여전히 가슴 한켠에
지워지지 않는 점을 찍고 있다.

그리워라 그 시절 가을의 한자락이야

언제쯤 너의 춤사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