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 발을 씻는 잠깐 동안
딸은 친구가 되었다가 걱정거리가 되었다가 어느새 입 속의 혀가 되고,
아들은 술안주가 되었다가 근심이 되었다가 결국 아픈 손가락이 되고,
손자는 귀염둥이가 되었다가 울화가 되었다가 다시 강아지가 되고.
언제 닦았는지 모를 하얗고 하얀 변기 위에 발을 올리고
문질러 닦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백년손님이라는 말은 백년은 지나야 가족이 된다는 뜻이었을까
서로 모르고 살아온 30여년의 세월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한없이
서러운 내가 조용히 바닥을 흘러 사라져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 까만 천장을 바라보며 아주 오래도록 뒤척인 뒤에야
무겁고 딱딱한 어떤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