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까지도 나는 잠에 취해 있었다.

하늘은 하루에도 몇번씩 묵직한 구름을 매달고
머리 위를 서성거리고 있었고
나는 답이 없으면 답을 만들라는 독촉에
책상 앞에서 하릴없이 밤을 보낸 상태였다,

양복 차림이긴 했으나 이 모양으로 사람 만나기는 힘들겠다 싶었고
사우나에 들러 땀을 빼고, 면도를 하고, 까쓸한 검정색 양말을 샀다
어기적거리며 사우나 문을 밀어내는 그 순간에도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문득 땅을 내려다 보았을 때
새로 산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좀 더 밝.은.색.을 샀으면 좋았을텐데,

창가 자리에 앉아
흐르는 구름과
한 낮에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면서
차리리 한바탕 쏟아지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으로 비가 내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또다시 목 안쪽으로 물컹한 무엇인가가 스르륵 넘어가는데
레스토랑의 문에서 딸.랑. 소리가 났다,

오랫동안 잊었던 꿈이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