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 소사 가는 길, 잠시 / 구름 그림자

소사 가는 길, 잠시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에 머물다 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내가 머물고 싶었으나 떠나보내야 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사람 사이의 관계, 인연 ... 그런 것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탄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던 시절이 있었던 것도 같다. 열심히 하면 누구라도 내 진심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진실한 나를 알릴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믿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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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전부라고 믿었기 때문에 지금껏 채우지 못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겠지 이제부터라도..

구름 그림자


태양이 밤낮 없이 작열한다 해도
바닥이 없으면 생기지 않았을 그림자

초봄 비린 구름이 우금치 한낮을 훑어간다

가죽을 얻지 못해 몸이 자유로운 저 구름
몸을 얻지 못해 영혼이 자유로운 그림자

해방을 포기한 시대의 쓸쓸한 밥때가

사랑을 포기한 사람의 눈으로 들어온다
2008/02/28 00:09 2008/02/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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