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역

오랜세월 쉬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했을
검은 화물차 위로 한마리 백로
가볍게 난다.

나도 모르게 하늘에 그려진 하이얀 자취를 쫓다가
쫓다가 나무가 앙상한 내장산 기슭을 더듬어
지난 가을 두고 온 추억과 긴 숨 한조각 만난다.

기차는 나를 싣고 삶으로 떠나고,
덜컹거리고, 휘청거리고,
마음은 정읍역 승강장을 서성이는데,

기차에서 내릴 때 쯤이면
가만히 뒤돌아 서서,
뒤늦은 미망을 웃으며 맞이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