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가는 길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뒤척뒤척 멀뚱거리다가
물 몇 병 챙겨들고 무작정 선운사로 페달을 밟는다.

마음은 밤하늘의 별을 밟으며 너울너울 달려가는데,
눈 앞은 끝이 보이지 않는 23번 국도를
전조등 불빛 하나에 매달려 휘청휘청
죽어라 직진 코스에 내비게이션도 무용지물
그저 앞만 보고 달린다, 땅만 보고 달린다.

아름다운 밤풍경도 없고, 반짝이는 별도 없다.
오르막 길은 힘들고, 내리막은 행복할 뿐
반을 넘게 달려왔으니 멈출 수 없어, 쓰러질 수 없어
나는 달린다.

선운사 풍경(風磬) 소리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추스리고,
마주치는 스님들께 합장 반배하고 돌아오는 길
지난 밤 버려진 풍경들이 이제야 나와 함께 달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비로소 여행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