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영 - 파리지옥 / 거리에서

파리지옥


긴 목숨의 내 삶이
너를 오래도록 기다리지

간질간질 내 육질을 지지면서
거리마다 자장을 흔들어
너의 새끼발가락까지 내 무릎에 올려놓으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이젠 너를 놓아줄 수 없어

누구와도 물 한잔 나누지 못해 홀로 서 있었지

불어대는 모래바람 속에서 건조한 살들을 만난다는 것은
사랑, 이라 말하기 불편했어.
필요에 의한 수급이 가끔 있었을 뿐이야.

하여, 먼지바람으로 네 음성을 막고
달콤한 너의 연육은 사막에 널어 두었지
혹시 너를 만날까 사막의 언덕을 돌아돌아 집에 이르곤 했어

그러나 너는 시럽냄새를 풍기며 사뿐히도 내게 온다.

순간,

하얀 꽃대궁을 밀어올리고 싶은 욕망이 불처럼 일어나

눈처럼 부신 다섯장 꽃잎을 펼쳐 올리면서
햇살을 받는 영광의 하루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젠, 바위같은 함묵을 깨워버린 너의 분홍빛 살점을

다시는 내어주지 않으리
나, 오랜 사멸의 늪에서 무척이나 버둥거렸지.
삶인지 죽음인지 초로를 마시고 모운을 삼켰지

그리고 이제 내 사랑은 지옥에 있거든
너는 파리지옥에 와 있거든


요즘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드는 관계로 뭐라도 공부를 해볼까 싶어서 JSP라는걸 붙잡고 있다.
뭐 일거리가 떨어지면 대충이야 해내는 상황이지만 워낙에 개념 부족인지라 책을 좀 봐야지 하고 사놓은지가 한참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을 읽어나가는데, 문득 책에 나와있는 얘기가 딱 지금 내 얘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이걸 설명하고 싶지만, 그럼 좀 먼 나라 얘기를 한참 해야하고 사실, 어떤 내용이 내 이야기 같았다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 )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하면, 모든 노래 가사가 자기 얘기처럼 느껴진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소설책도 아니고, 프로그래밍 책을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다니.. 직업병인건가?


거리에서


   내 마음 하나 비우지 못해 길을 걸었다 유쾌한 아낙네들 거리에 쏟아져 있고, 남 모르는 햇살을 간직한 채 미쳐 우는 바람은 아직도 내 곁에. 시계는 갔다 그저 제가 가르치고 싶은 지침은 하나도 못 가르치고 내 시계는 갔다 사랑이 찬란한 빛을 잃었듯이 마음은 흘러가고 있었다 누구든 머무는 바람을 안다면 내게도 좀 가르쳐다오 나아 그를 만나 떠다니지도 않을 곳에서 내 마음의 꽃들 걷어내고 싶어 파리의 보헤미안처럼 파가니니의 협주곡 하나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같은 저음의 고요를 하나쯤 간직하고 아무도 없는 섬에서 조금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내 그리움 사무치는 파도에 휩싸이는 여름을 보내고 나면 비바람이 그칠는지 골목길에 떠드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내 그리움 훌훌 털어낼 수 있다면 더 슬픈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면 끝없이 나를 따라다니는 그림자 없어도 된다면 나아 그 길에 있고 싶어 그 길에 내 노래 하나 무덤을 만들어놓고 무심하게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2008/02/27 10:15 2008/02/2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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